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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과 망상2019. 2. 28. 17:18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왜 백제를 백잔이라고 했을까?
한자를 잘 몰라 위키와 사전을 뒤져보면서 읽어봤다.
소위 논란이 된다는 신묘년조에 관심이 생겨서 전문을 나무위키에서 읽어봤다.
신묘년조라는건 다음의 내용이라는데, 나무위키에서 보면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서 조공을 해 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잔○○○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상기와 같이 번역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와 같이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속민이었으나, 신묘년에 왜가 넘어가 백제,신라 등을 자기들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해석해서 신라백잔○○○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은 주체가 왜라는 얘기로 번역이 된다고 주장한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의 작성 주체가 고구려인만큼 주어를 달리하면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의 속민이었으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침입하니 백제, 신라등을 아예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찬찬히 살펴보면 광개토대왕릉비의 신묘년 내용 다음 문장부터는 영락6년~영락20년까지의 내용을 서술하고 주로 백제,신라,왜를 격파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신묘년 기사는 후술되는 내용의 요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의역해보면,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서 조공을 해 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부터 바다를 건너왔다. 백잔을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영락6년~20년 내용은 대부분 백제와 왜를 치는 것이고 신라는 구원을 받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근데 유독 백제만큼은 백잔이라고 부르며 마치 조무래기, 잔당등으로 비춰지게 비하의 표현을 한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광개토대왕 입장에서는 할아버지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어렵게 만든게 백제뿐이던가...

아마도 할아버지를 죽인데다, 타국을 움직여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백제가 얄미웠거나 꽤나 상대하기 어려웠던 상대여서가 아닐까?
결국 왜가 신묘년부터 바다를 건너온 것은 백제 때문임을 암시하는게 아닐까?
바다를 건너온 것은 왜인데, 백제를 멸시하고 비하한다니...신라를 치는 것도 왜인데, 그 이전 문장은 백제가 왜와 내통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백제가 왜를 움직여서 고구려도 치고, 신라도 치고 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즉, 백제가 왜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게하니, 화가 나서 백제를 영락6년에 쳐서 58성 700촌을 빼았았고,
영락9년에는 백제가 왜로 하여금 신라를 또 치게하니, 신라를 구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라만 노략질하고 공격하지 않고, 가야지역도 들쑤셔놓은 듯...
그래서 임나가라의 종발성이 왜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고...


만약 그렇다면 백제가 얼마나 얄미웠으면 백잔이라고 표현했을까? 그게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백제가 안보이고 백잔만 기록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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